Movie to Fashion 11편
크리스마스에는 스웨터를 입어야 한다
스타일 | 2023. 12. 01 | 조회수 : 3466
Edited by 김도훈

나도 어글리 스웨터가 있었다. 어글리 스웨터란 무엇인가. 못생긴 스웨터를 말한다. 못생긴 스웨터란 무엇인가. 온갖 화려한 패턴이나 캐릭터가 새겨진 스웨터를 의미한다. 그렇다. 당신은 이런 스웨터를 지금은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지나치게 프린트가 과감하거나 패턴이 화려한 옷은 잘 입지 않게 된다. 회색, 검은색이나 베이지색 니트류에만 유독 손이 가게 마련이다. 요즘은 또 ‘올드머니룩'이 유행이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사실 나는 올드머니룩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올드머니룩은 대대로 많은 돈을 물려받은 부자들의 스타일이다. 이걸 우리가 따라 한다고 부자처럼 보일 리는 만무하다. 자라에서 산 아크릴 90% 베이지색 가디건은 당신을 올드머니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슬프지만 어쩌겠는가. 머니란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회색이나 베이지색 니트를 피할 수는 없다. 니트라는 아이템이 그렇다. 실로 엮은 짜임새가 고스란히 보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조금 정신없는 옷이다. 특히 두툼하게 실로 짠 스웨터는 실이 만들어 낸 패턴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하다. 거기에 여러 다른 색상으로 구현한 패턴이나 캐릭터가 박히는 순간, 그렇다. 그 스웨터는 대개 어글리해진다.

거기에 겨울 특유의 화려한 눈이나 사슴 문양이 들어가는 순간, 당신은 아이가 된다. 어린이가 된다. 엄마가 찍어준 유년기 크리스마스 사진들을 한 번 찾아보시라. 당신은 분명 루돌프 문양이 있는 초록색 스웨터를 입고 온갖 색색의 실로 짠 털모자를 쓰고 대충 만든 눈사람 옆에서 앞으로 다가올 인생에는 아무런 고난도 없을 거라 확신하는 표정으로 웃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위 문장의 ‘순록 문양이 있는 초록색 스웨터’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에서 마크 다아시가 브리짓 존스를 처음 만난 날 입었던 어글리한 스웨터 말이다. 다아시의 스웨터는 영화 속에서 분명히 ‘딱히 취향은 없지만 엄마 말은 잘 듣고 투박한 인권 변호사'라는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됐다. 브리짓 존스가 그걸 보는 순간 느꼈을 알 수 없는 거부감을 상징하기 위해 쓰였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마크 다아시를 연기하는 건 콜린 퍼스다. 그는 지금도 멋있지만 2001년에는 정말이지 꿈같은 남자였다. 콜린 퍼스 같은 남자가 뭘 입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는 똥 덩어리 패턴이 있는 똥색 스웨터를 입어도 멋있을 것이 틀림없다.
아니다. 나는 지금 ‘잘생기면 뭘 입어도 멋있다'는 외모지상주의를 설법하려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옷을 살 때 모델이 입은 사진을 보고 선택하지만, 모델과 똑같은 핏이나 분위기가 날 거라는 기대는 없다. 그런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할리우드 배우나 모델들이 얼마나 불행한 존재인가. 그들은 크리스마스 저녁 성찬에서도 맛대가리 없는 샐러리나 저지방 마요네즈에 찍어 먹을 존재들이다. 우리는 다소 과체중이지만 훨씬 행복한 사람들이다. 아, 이 문장도 어째 진실성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서로를 응원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헌신과 나눔으로 대표되는 크리스마스 정신 아니겠는가.

사실 크리스마스는 조금 웃기는 옷을 입어도 좋은 날이다. 매일 입던 지루한 베이지색 스웨터를 집어 던지고 지나치게 화려한 문양이 있는 스웨터를 입어도 괜찮다. 꽃이나 코끼리가 새겨진 겐조의 스웨터나, 거대한 여우 얼굴이 있는 메종키츠네의 스웨터, 이리저리 날아가는 제비가 있는 알렉산더 맥퀸의 스웨터 같은 것들을 언제 입겠는가 말이다(다 머스트잇에서 찾을 수 있는 아이템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어글리 스웨터는 요즘은 ‘어글리 스웨터 파티'라는 게 열릴 정도로 꽤 유명한 아이템이 됐다.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위해 직접 짠 스웨터를 선물하던 영국의 오랜 연말 풍습이 <브리짓 존스의 일기>라는 영화 속 기념비적인 장면을 만나 일종의 유행으로 폭발한 것이다. 캐나다 밴쿠버는 아예 12월 21일을 ‘어글리 크리스마스 스웨터 데이'로 공식 지정하기까지 했다.

왜 하필 어글리 스웨터냐고? 가만 생각해 보시라. 그런 스웨터를 입으면 사람은 좀 부드러워지게 마련이다. 베이지색 니트를 입을 때와 어글리 스웨터를 입을 때의 마음가짐은 다르다. 어글리 스웨터를 입으면 사람은 좀 풀어진다. 크리스마스 정신에 더욱 잘 맞아떨어지는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사실 나도 어글리 스웨터 하나를 노리고 있다. 전통의 겨울옷을 만드는 몽클레어와 요즘 가장 힙한 브랜드 중 하나인 팜 앤젤스가 컬래버레이션으로 내놓은 ‘성난 곰 스웨터'다(이것 역시 머스트잇에서 찾을 수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어쩐지 누구를 만나도 미소를 지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드는데, 옷이라도 좀 화를 내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다. 요즘 내 몸이 곰에 가까워지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에 다이어트를 시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다이어트는 크리스마스 시즌 이후로 미루기를 권한다. 물론 그 다이어트는 아마도 다음 크리스마스 시즌 이후로 미뤄지겠지만 말이다.

어글리 스웨터를 도저히 입어낼 자신이 없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니트를 입고 싶다면 답은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다시 보게 되는 징글징글한 영화 <러브 액츄얼리>(2003)다. 이 영화는 어찌나 징글징글한지 굳이 넷플릭스에서 찾아보지 않더라도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보면 자동으로 우리를 역습하고야 만다. ‘백 번도 더 봤는데 또 봐야 하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상하게 채널을 고정하고 마지막 장면까지 보아내게 만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휴 그랜트가 연기하는 영국 총리 데이빗이다. 그는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나탈리(마틴 맥커친)과 사랑에 빠지는데, 나는 그 이유가 나탈리의 옷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겨울 정장을 입은 공무원들 사이에서 확연히 눈에 띄는 빨간 니트와 빨간 코트를 입고 있다. 거기에 빛나는 금장 버클까지 한 나탈리의 패션은 그야말로 ‘사랑에 빠지고 싶어요'라는 사인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빨간색이 어떤 색인가. 산타클로스가 입는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의 색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사랑에 빠지고 싶다면 빨간 스웨터를 입으시라. 과체중의 내가 그걸 입는다면 어떻게 봐도 산타클로스처럼 보이겠지만, 당신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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